커뮤니티 맵핑 전문가 임완수 동문 (도시.84)

 

   

 

작년 10월 말, 미국에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불어 닥쳤다. 샌디는 뉴욕을 유령도시로 만들고, 100명을 웃도는 사망자 수와 500억 달러(원화 약 55조 원)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초대형 자연 재해 앞에서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대혼란에 빠졌다. 특히 피해가 막심했던 뉴저지에서는 전기 공급의 80%가량이 중단돼 대부분의 주유소가 기능을 상실했다. 비상사태에 자가용에 기름을 채우려는 인파로 인해 일대 주유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생존에 대한 갈망으로 불안감과 조급함이 뒤섞인 사람들. 분초를 다투는 초조한 시간.

 

이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 머해리의과대학(Meharry Medical College) 교수인 임완수 동문(도시.84)과 그가 이끄는 프로젝트 팀은 지도를 만들었다. 다수의 구성원이 십시일반으로 지도 제작에 참여하는 커뮤니티 맵핑 방식으로 '주유소 지도'를 제작한 것. 임 동문은 일대에서 정상영업 중인 주유소 위치와 대기시간 등을 인터넷 지도에 표시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공유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활용해 촌각을 다투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이 별난 지도는 당시 미연방재난관리국(FEMA)과 구글 재난맵에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그 결과, 제작이 빠르고 공유가 쉽다는 커뮤니티 맵핑의 효용성을 유감없이 뽐낼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공유한 주유소 특화 지도가 현실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해낸 것이다. 임 동문이 만든 주유소 지도는 뉴욕 타임즈, 허핑턴 포스트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한국에서도 많은 언론들이 보도했다.

 

공유하지 않은 정보는 쓸모가 없다

임 동문이 커뮤니티 맵핑, 즉 지도를 활용한 지역사회 문제해결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사건은 지난 2004년에 뉴욕 여행에서다. 딸아이 용무가 급한 상황, 도심 공중화장실은 줄이 너무 길어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먼 기차역까지 가게 된 것. 임 동문은 ‘내가 위치를 몰라서 그렇지 분명 화장실은 많을 텐데, 정보 공유가 안되면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구나’라고 생각했단다. ‘NYrestroom(www.nyrestroom.com)’은 이 같은 배경을 안고 지난 2005년에 탄생한 화장실 지도다. 뉴욕에 공중화장실 위치는 물론 실제 사진과 평가 점수까지 알아보기 쉽게 구성했다. NYrestroom은 지도 데이터를 다수의 구성원들이 정보 공유를 통해 수집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맵핑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각자의 5분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화장실 지도에서 시작해 현실 사회의 문제해결에 활용된 주유소 지도에 이르기까지, 임 동문은 커뮤니티 맵핑을 말하면서 기대와 자신감에 찬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임 동문이 말하는 커뮤니티 맵핑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둘째, 그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을 바꿀 수 있다. 커뮤니티 맵핑은 세상을 바꾸는 지도를 만들다가 내가 바뀌는 ‘참 좋은 것’이라는 게 임 동문의 이야기다. “초반에는 지도의 효용에 집중을 했어요. 완성된 지도가 사회에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가 주 관심사였죠.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지도를 만드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람이 변하는걸 제가 직접 봤거든요.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교육을 받고 소통과 참여로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고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지역사회 문제들을 지도제작을 위해 유의미하게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커뮤니티 맵핑과 사랑에 빠지다


   
미국에 살고 있는 임 동문은 보름 간의 짧은 귀국일정 동안 무척이나 바빴다. 국내에 커뮤니티 맵핑 센터 설립을 위해 후원 기업을 찾아 백방으로 뛰고 있는 것. ‘사실 커뮤니티 맵핑 일을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로 조금 힘들긴 해요(웃음).” 소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위에 있음에도 여러 사회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에서 교수를 하면서 공익적 성격을 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서울 지하철에서 폐지를 주우러 다니시는 어르신들 옆을 지나갈 때면 항상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어요. 커뮤니티 맵핑을 활용해 조금 더 나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습니다.” 그에 따르면 커뮤니티 맵핑은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점을 해결하는 도구다.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구성원이 협력해 가치 있는 지식을 창조하는 힘이다. 다수의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맵핑은 집단지성으로 분류된다. “제가 하는 연구와 강의는 함께 우리 주변의 지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지리정보라는 측면에서 집단지성을 쓰는 것인데요. 성공적인 커뮤니티 맵핑은 다수의 참여가 필수조건이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일반 대중을 끌어들일 커뮤니티 맵핑 전문 활동가들이 필요하다는 거죠. 요즘 제가 집중하고 있는 커뮤니티 맵핑 센터 건립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지도 데이터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없는지 궁금했다. “일단 커뮤니티 맵핑을 시작하는 주체는 익명의 다수가 아니라 훈련 받은 전문가들입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하지만, 그 시작은 평소 프로젝트에 관심을 둔 그룹이라는 거죠. 때문에 데이터의 정확도와 신뢰도는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또 사이트마다 관리자가 있고 사람이 많아지면 자체 정화작용도 이루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임 동문은 커뮤니티 맵핑이 과거엔 취미였지만 지금은 사명감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누군가 그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사회를 기껏 요만큼밖에 못 바꿉니다.”며 폄하했을 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제가 요만큼 바꾸면 또 다른 사람이 또 요만큼 바꾸겠죠.”

 

“실은 대학 때부터 사회의 불평등을 항상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때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하고 디스코와 막걸리에 빠져있던 여느 대학생과 같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역사회의 문제와 해결방법에 대해 배우고 커뮤니티 맵핑을 하면서 제가 구체화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삶의 목적과 꿈을 다시 찾은 거죠. 거기에 맞춰 삶의 계획도 달라졌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는 분야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한 곳이면 무엇이든 프로젝트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미국에서 강에서 폐사한 물고기를 주제로 커뮤니티 맵핑을 진행했었다. 그 결과 특정 지점에서 환경문제가 있다는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되었고 지도는 해당 당국이 대책을 마련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커뮤니티 맵핑의 강점은 분야를 막론하고 응용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환경문제에서부터 장애인 편의까지 문제가 있는 곳에서 데이터를 모아 지도로 만들면 한눈에 원인이 보이죠. 공유된 지리정보는 무궁무진하게 활용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요.”

 

담배꽁초 투기 같은 대학가 주변의 문제점도 커뮤니티 맵핑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담배꽁초가 유달리 많이 버려지는 곳을 지도에 표시하고 사진을 첨부해 공유하면 그게 모여 데이터가 되겠죠. 학교 측에서 그 지도를 보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겁니다.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죠. 담배꽁초 투기를 지도화하면서 학생들은 담배꽁초를 투기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지도 만들기가 손가락 톡톡 몇 번으로 가능해졌어요. 길을 걷다가 담배꽁초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면 휴대폰을 들고 온라인 상의 지도에서 해당 지점을 찍어주면 다한 거에요. 한 명, 한 명의 손쉬운 노력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겁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혼자서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고 덧붙이며 채팅 앱에서 자신의 프로필 글귀를 보여주었다. ‘시간, 공간, 스펙트럼, 그리고 사랑’. 그는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의 힘을 믿고 있었다.

 

 

 

학력 및 약력


   
임완수 동문(도시.84)은 우리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North Carolina University)에서 도시계획 석사 과정을 거쳐, 럿거스 뉴저지주립대학(Rutgers, the State University of New Jersey-New Brunswick)에서 도시계획-공공정책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머해리의과대학조교수 겸 럿거스 대학(Rutgers University)의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웹에 기반한 공동참여형 지리정보를 공유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그는 커뮤니티 맵핑 전문가다. 커뮤니티 맵핑 컨설턴트로서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국내외 많은 프로젝트를 직접 이끌고 있다.

 


김철웅 학생기자 chulwoong7@hanyang.ac.kr
정규진 사진기자 flowkj@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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