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민 애니메이션 감독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02)

우경민 감독에게 지난 한 해는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그는 <자니 익스프레스>로 단숨에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으며 재기발랄한 신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5월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vimeo.com)’에 <자니 익스프레스>를 올릴 때만 해도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어 올린 이 짧은 영상은 곧 메인 화면에 올랐고, SNS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글. 오인숙
사진. 안홍범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 애니메이션 <자니 익스프레스>를 제작해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우경민 애니메이션 감독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02).

 

지난해 <자니 익스프레스>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과 반응은 놀라웠다.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이 내놓은 5분가량의 짧은 영상은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택배 배송 이야기를 다룬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국내외 수많은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이스 에이지>·<미니언즈> 등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의 크리스토퍼 멜라단드리 회장은 “주인공이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라며, “최고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이 작품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자니 익스프레스>의 장편화를 결정했다. 현재 우경민 감독이 소속된 모팩앤알프레드와 일루미네이션이 함께 <자니 익스프레스>를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웃음) ‘재미있는 스토리’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 서로 조율하고 맞춰가야 할 부분이 많아요. 이제 1년 정도 작업했는데, 앞으로 몇 년은 더 지나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자니 익스프레스>의 장편 작업과 함께 그는 또 다른 파일럿 영상을 준비 중이다. 전작처럼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짧은 영상의 웹 시리즈가 될 전망이다.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새로 들어가는 작품에서는 연애 이야기를 다뤄 보고 싶어요. <자니 익스프레스>와는 달리 성인을 타깃으로 한 대사 위주의 애니메이션이 될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영역으로의 도전인 셈이다.

 

끊임없는 반복 수정으로 완성도 높여

 

   
▲ <자니익스프레스> 포스터.

<자니 익스프레스>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그는 3D 아티스트 작업자에 불과했다. 스태프도 없었고, 그를 감독이라고 부르는 이도 없었다. 회사에서 모션그래픽(영상 디자인의 한 분야로 그래픽에 모션, 즉 움직임을 주는 표현 방법)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연출하게 된 걸까?

 

“오래전부터 저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2013년 초에 웹 기반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고, 캐릭터 시장이 점점 성장하는 걸 느꼈습니다. 창작 활동에 대한 꿈과 3년간 회사에서 일하면서 얻은 기술적인 자신감을 바탕으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회사에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렇게 만든 첫 번째 프로젝트가 영어 교육 영상인 <잉글리시 뱅>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투자를 받지 못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심기일전한 그는 좀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사람들을 단번에 매료시킬 수 있는 스토리가 없을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주 택배 이야기를 떠올렸다. 우주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획 작업에 돌입했다. 제작 기간의 대부분은 기획과 캐릭터를 잡는 데 소요됐다.

 

   
▲ “오래전부터 저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는 우경민 동문은 사람들을 단번에 매료시킬 수 있는 스토리가 없을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주 택배 이야기를 떠올렸다. 제작 기간의 대부분은 기획과 캐릭터를 잡는 데 소요됐다.

 

“애니메이션 연출은 처음이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하나 깨달아야 했어요. 그 과정이 가장 힘들었죠. 관객 입장에서 볼 때 진행이 느리거나 쓸데없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거나 아이디어가 없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불필요한 장면은 버리고 재미있는 장면은 더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오랫동안 수정 작업을 거쳤어요. 제가 첫 번째 관객의 입장이 되어 장면을 만들고 고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죠.”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우 감독은 “이 과정이 없었다면 <자니 익스프레스>는 한 달 안에도 제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며, “만족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하고 바꾸는 것만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특별함을 만든다

 

<자니 익스프레스>가 가진 개성과 독특함은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우경민 감독은 회사에서 기획, 제작 등 여러 파트의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애니메이션과 디자인을 두루 접했다. 그는 “다양한 작업을 경험해봤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이것저것 섞일 때 특별한 무언가가 나온다”고 말한다. 소위 말하는 융합의 힘이다.

 

   
▲ <자니 익스프레스>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디자인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됐다. 이는 우경민 동문이 디자인 공부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자니 익스프레스>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디자인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됐어요. 일례로,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쓰는 라이팅(lighting; 가상의 조명을 세팅해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나 렌더링(rendering; 2차원의 그림에 사실감을 불어넣어 3차원으로 만드는 과정) 대신 컬러나 형태로 승부할 수 있었던 것도 디자인 공부를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지금은 어엿한 크리에이터지만, 학창 시절의 그는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꿈꾸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애니메이션이나 예술 분야에 뛰어들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기업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현실적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가장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잘하는 것을 개발하는 게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무엇을 잘하는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에 입사한 이들이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얘기를 할 때면 안타까워요. 회사의 이름이 아닌 그곳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것이 결국은 롱런의 비결이 아닐까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을 것들

 

<자니 익스프레스>의 성공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시키는 일을 하던 입장에서 이제는 스스로 일을 만들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이때, 정작 그는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꾸만 생기는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 우경민 동문은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무엇을 잘하는지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자니 익스프레스>는 욕심을 많이 버리고 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부담감이 커진 만큼 욕심이 생겨요. 그래서 거창한 꿈이나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제 안의 욕심을 버리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제가 이겨내야 할 과정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의연한 감독의 모습을 갖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는 우경민 감독. 그가 꿈꾸고 바라는 감독은 어떤 모습일까? “<토이 스토리>를 만든 존 라세터처럼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관객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누구나 믿고 볼 수 있는 감독도 되고 싶고요. 하지만 그건 정말 먼 미래의 얘기예요. 아직 제겐 감독이란 호칭도 익숙하지 않거든요. 제 스스로도 아직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이제 막 그런 기회를 얻었을 뿐이죠.”

 

‘아직은 설익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한껏 낮추는 우경민 감독.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찬 미래를 엿본다.

 

키워드

'한양위키' 키워드 보기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